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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5일 일요일

이민자의 또 다른 문제, 연방제와 네거티브

흔히들 이민 1세대는 ‘희생하는 세대’라고 합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익숙한 환경을 떠나 완전히 판이 다른 새 땅에서 험한 일도 마다 않고 기꺼이 희생하는 이유는 아마도 ‘다음 세대’ 때문일 것입니다. 이민 1세대는 그렇게 본인의 손을 잡고 캐나다에 도착한 이민 1.5세대 또는 이곳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면서, 자녀가 미래에 누리게 될 특권과 행복을 그리며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 기꺼이 일과를 마감하곤 합니다. 이따금, ‘혹시 우리 애가 나중에 캐나다 유명 인사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백일몽을 꾸기도 하면서요.

그런데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좋은 곳’을 찾아왔다지만, 한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혹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으로 느껴보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곤 하니까요. 공항 입국장을 벗어나 밖으로 나와 느끼는 후련함과 설렘도 잠시, 바로 닥쳐오는 생계나 언어장벽으로 인한 어려움도 크지만, 얼마 후면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 앞에 서기도 합니다. 바로 내가 희생을 각오하고 캐나다에 안착시킨 자녀와의 갈등입니다. 그런데 갈등도 갈등이지만, 그 갈등의 원인조차 모호합니다. 한국에서라면 쉽게 부모-자식 간의 ‘세대 차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면이 있으니까요. 어쩌면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일어나는 일은 아닌지, 그 속내를 몰라 답답하기만 합니다.

20여년 전 캐나다에 온 저도 비슷한 과정을 겪으면서 그 엉킨 실타래의 실마리를 찾느라 고심했었습니다. 그러다 세대 차이나 언어장벽보다 더 깊은 곳에 나와 다음 세대를 갈라놓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찾아낸 원인은 두 가지인데, 바로 캐나다의 ‘연방제’와 ‘네거티브 시스템’입니다.

연방 – ‘서로 다른 나라의 연합’

해마다 7월 1일이 되면 캐나다는 축제 분위기로 들썩입니다. 캐나다 연방 출범을 기념하는 ‘Canada Day’니까요. 영국과 전쟁을 치르며 독립한 미국(Independence Day; 7월 4일)과는 달리, 캐나다는 본국 정부가 “이제는 분가할 때가 됐네”라며 등을 떠밀어 독립국이 되었지요. 그렇게 두 나라는 서로 다른 모양새로 독립했지만, 두 나라 모두 ‘연방’이라는 형태로 출범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연방제는 ‘중앙집권-지방분권’ 그런 수준이 아니라 조금 심하게 말하면 ‘서로 다른 나라의 연합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명은 그때그때 바뀌었지만 수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 살면서 역사와 전통을 공유해온 한국인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참 쉽지 않은 개념입니다.

끊긴 길, 끊긴 내일

연방제가 서로 다른 나라의 연합체라는 증거는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온타리오주 최남단에 있는 도시 윈저(Windsor)를 출발해 토론토(Toronto)를 지나 북동진하는 ‘온타리오 401’ 고속도로는 퀘벡주와의 경계를 넘으면 ‘퀘벡 20’으로 이름이 바뀌어 몬트리올(Montreal)과 퀘벡시(Quebec City)로 이어집니다. 길은 그대로인데, 마치 뉴욕주를 관통하는 미국의 ‘Interstate-81’이 캐나다와의 국경을 넘어 킹스턴 근처에서 ‘온타리오 401’로 바뀌듯이, 같은 캐나다 내에서도 도로명이 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길 위를 달리는 차는 그대로인데, 길은 끊긴 듯 사라지고 다른 길로 이어집니다.

최근에 캐나다 각 매체에 실린 기사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합니다. 캐나다 동부 퀘벡주(Quebec)의 한 여행객이 캐나다 최서부 비씨주(BC)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에 갔는데 병원비 부담 문제 때문에 수술을 거부당했다는 것입니다. 퀘벡주 건강보험으로는 비씨주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게 해당 병원 원무과의 설명이었답니다. 자세한 경위와 관계자들의 입장은 앞으로 더 밝혀지겠지만, 이번 해프닝에서 캐나다 내 어떤 주정부가 다른 주 주민들의 건강보험을 자기 주민과 동등하게 대우해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위 두 가지 사례는 한국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이민 1세대가 캐나다는 한국식 지방자치제가 아니라 조금 심하게 얘기해서 ‘독립적 국가 10개와 북극 동토 3개 지역이 모여 캐나다라는 한 지붕 아래 모여 산다’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1995년 퀘벡주 분리독립 문제가 국민투표에 부쳐졌을 때 연방정부가 얼마나 긴장했는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크레티앙(Jean Chrétien) 총리는 훗날 캐나다 중앙은행 몬트리올 지점에 있던 현찰 수억 달러를 꺼내 투표일 전날 모처로 옮겼다고 털어놓은 일이 있습니다. 실제로 독립안이 통과되면 그 돈을 연방정부가 찾아올 수 없기 때문이었답니다. 투표결과는 반대 50.5% 대 찬성 49.5%였습니다. 당시 캐나다는 거의 쪼개질 뻔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캐나다에서는 연방 구성원 하나가 ‘우린 연방에서 탈퇴할래’라고 했을 때 연방정부가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퀘벡주는 이민제도도 연방정부와 완전히 독립적으로 PNP에 가입하지 않은 채 운영하는데, 거의 독립국 수준으로 영주권 대상자를 선별합니다. 이민자 선별작업의 용어도 다릅니다. 다른 9개 주처럼 ‘추천(nomination)’이 아니라 ‘선택(select)’이라고 부릅니다. 마지막 단계인 영주권 교부는 ‘캐나다’라는 대표가 맡아야 하기에 그 업무만 연방 이민부로 넘깁니다.

다름의 문화

한국은 지금까지 어느 정도는 ‘동질성’이 보장된 사회이지만 연방제인 캐나다에서는 ‘상대주의’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캐나다의 국가문화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캐나다는 동질적이고 균질적인 문화가 아니라 ‘다름’을 대폭 인정하는 문화입니다. 말하자면 빨강색과 파랑색은 다를 뿐이지 어느 한 쪽이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는 곳이 캐나다라 할 수 있습니다.

연방제와 거의 반대쪽에 있다 할 수 있는 정치체제에서 살던 이민 1세대가 상대주의와 개성만발의 연방제 국가에서 교육받고 자란 2세대와 갈등을 겪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공동체의 가장 넓은 범위인 국가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면 그 외의 가치관도 다를 것입니다. 그리도 이 ‘다름’은 누가 누구를 가르쳐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인생 후반전을 캐나다에서 살겠다고 결정한 1세대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

네거티브 시스템

한 나라의 법률상 규제를 논할 때 그 범위의 넓고 좁음에 따라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과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Positive System은 ‘법에서 정한 사안만 용납된다’로 정리할 수 있고, Negative System은 ‘법에서 금지된 것 외에는 다 허용된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와이낫?

말하자면 네거티브 시스템에서 규제가 훨씬 좁은 범위로 이뤄지고 그만큼 시민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 개인의 머리 속이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좀더 나아가 “왜 안돼? (Why not?)”라는 도전정신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법체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야훼 하나님께서 “저기 저 선악과만 빼고 다른 모든 실과는 먹어도 좋다”고 선포한 일이 네거티브 시스템의 가장 좋은 예입니다. 즉, 그것 하나만 빼놓고 무엇이든지 먹어도 괜찮았지만, 바로 그 한 가지를 불순종하는 바람에 낙원에서 쫓겨난 것이지요.

온타리오주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네거티브 시스템은 교차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호등이나 표지판에 의해 허용되는 곳에서만 U턴이 가능하지만, 온타리오주에서는 ‘U턴 금지’ 표지판이 없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직진신호가 들어와 있는 교차로에서 U턴하는 일도 허용됩니다. 직진신호에서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것을 더 확대 해석해 U턴까지 가능한 것입니다. 한국은 포지티브, 온타리오주는 네거티브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퀘벡주 경계를 넘어서면서 고속도로명이 바뀐다는 얘기했지만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니라 표지판도 달라집니다. 불어로만 쓰였다는 점 외에도 ‘최저제한 속도’라는 게 등장합니다. 온타리오주 도로에서는 최저속도 제한을 본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퀘벡주의 고속도로는 모두 최저속도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속차량뿐 아니라 저속차량도 단속합니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지정된 속도 이상으로 달리지 마시오’라고 하지만, 퀘벡주에서는 ‘지정 속도 범위 안에서만 운전해야 하는’ 특별한 일이 돼 버린 것입니다.

퀘벡주는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포지티브 시스템 분위기가 강합니다. 교차로의 신호등부터 차이가 납니다. 몬트리올에서 신호등이 7개나 되는 교차로도 본 적이 있습니다. 직진신호도 그냥 둥근 초록불과 화살표가 들어간 초록불이 있고요, 우회전도 신호등이 들어와야 허용되는 곳도 많습니다. 물론 이것은 요즘 자전거 운행자 때문에 생긴 규제이긴 하지만 온타리오주보다는 훨씬 간섭이 심한 편입니다. 온타리오주는 차로 바깥쪽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을 때 신호등보다는 표지판으로 운전자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경우가 많은 반면, 퀘벡주는 신호등으로 철저하게 ‘시킨 대로 해’라고 강조하는 분위기입니다.

현재 이민자 중에 50대 이상 대부분이 한국에 있을 때는 이런 식으로 ‘시키는 것만 해’라는 분위기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반면에 ‘금지된 것 몇 가지 외에는 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제도하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세대가 이전 세대와 갈등이 없을 수가 없겠지요. 그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딜레마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길 위에서 ‘김치즈!!!’

요즘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태어난 소위 X세대와 90년대와 2000년대에 출생한 MZ세대 간의 ‘세대 갈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반면, 캐나다에 이민 온 한국인 가정에서는 이와는 다른 갈등 요인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우리’란 말에 더 익숙한 세대와 ‘나’를 내세우고 주장하는 소위 ‘me generation’이 공존한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데, 시스템 차이까지 안고 있으니 더욱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런 상항에서 “도대체 쟤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이나 생각은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들도 같은 식으로 “우리 엄마(아빠)는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어”라고 불평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다음 세대에게 부모 세대를 이해해 달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그보다는 어차피 희생하겠다고 이민 온 1세대가 “성장 환경이나 배경이 나하고는 많이 다르구나, 그것도 단순한 세대 차이가 아니라 시스템의 차이구나”라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더 쉬울 듯 합니다. 갈등 속에서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릴 수도 있지만, 이해하고 기다리다 보면 2세대 역시 이런 차이를 이해할 날이 올 테니까요. .

엉킨 실타래를 들고 있다면 잠시 내려놓아도 좋을 것입니다. 가뿐한 마음으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힘차게 달려봅시다. 달라진 도로명 앞에서 잠시 내려 서로의 손을 잡고 ‘찰칵’ 기념사진 한 장 찍어도 좋겠지요. ‘김치’도 좋고 ‘치즈’도 좋습니다. 뒤섞인 그 소리가 불협화음처럼 들리겠지만, 서로의 얼굴에 깃든 것은 환한 미소일 테니까요. 오늘도 길은 그렇게 끊긴 듯 이어져 뻗어나가고, 햇살 가득한 내일도 여전히 그 길 위에 있을 것입니다.  <David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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