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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9일 금요일

‘벤츠 타고 싶다!’고요? 그런 차는 없습니다!

언어 – ‘의사소통의 도구’라 말합니다. 하지만 그 의사소통에도 ‘질’이 있고 ‘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용하는 그 언어의 질과 격이 현지 생활에서 얻는 만족도와 즐거움의 질과 격을 달리해줄 것입니다. 이 글은 그 질과 격에 관한 글입니다.

“유어 벤츠 룩소 나이스!”

‘Relevance’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적확성’, 즉 ‘적절하고 정확한 (표현)’이란 뜻입니다. 영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는 별로 어렵지 않은데, 영작할 때 한영사전을 찾아봐도 제대로 된 단어가 안 나올 때가 있습니다. 영어로 “내일 치과 예약돼 있어” 할 때와 “다음 주에 쓸 렌터카 예약 좀 해”라고 할 때, 저 두 ‘예약’은 어떤 단어를 쓸까요?

유학이나 이민을 꿈꾸거나 실제 랜딩할 정도라면 그래도 나름 영어에 자신 있는 분일 것입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자만심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게 바로 적확한 단어를 쓰지 못해서 일어난 상황입니다.

벌써 20년이 다 됐습니다. 랜딩한 지 두 달쯤 됐을 때인데, 우연히 어느 캐내디언 가정에 초대받았습니다. 그 때는 네비게이션이란 게 없던 시절이라 지도를 보며 더듬듯 알려준 주소지로 찾아갔습니다. 낯선 땅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 집에 들어서는데, 드라이브웨이에 있는 세단 한 대가 보였습니다. 바로 동그라미 안에 삼각별 로고가 선명한 ‘벤츠’였습니다. ‘흠, 저걸로 대화를 시작하면 어색하지 않겠다’ 생각하며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자 주인장하고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벤츠 얘기를 꺼냈습니다. 괄호 안은 제 머릿속 생각입니다.

제가 “유어 벤츠 룩소 나이스!” 이렇게 말하면 주인장은 ‘뭐, 그 정도야’ 하든지, ‘오, 떙큐’할 줄 알았는데, 실제는 달랐습니다. 실제 반응은 “응? 뭐라고?”하며 못 알아듣는 표정입니다. (헉, 이 쉬운 말을 왜 못 알아듣지? 내가 괜히 looks를 썼나? 그냥 be 동사를 쓸 걸…)

다시 벤츠 얘기를 하면서 무리하게 혀를 좀 더 굴렸습니다.
“유어~ㄹ 벤츠 이즈 소 나이스!”
“…?…” (어, 그런데 또 못 알아듣네. 아니, 나도 영어 좀 한단 소리 듣다 이민 왔는데, 이 쉬운 말도 못하나…. 내 발음이 그렇게 안 좋은 건가…)

그 짧은 순간에 실망이 억수같이 밀려오고 손바닥에 땀이 삐질삐질 났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고 다른 화제로 넘어가자 싶어,
“Your car, Benz, looks so nice!”라고 하자, 주인장은 그제야 “Aha, My Mercedes?”라고 받는 것이었습니다.

(뭐, 멀시디스? 맞다, 예전에 영화에서 보면 저 차를 보고 벤츠가 아니라 ‘멀시디스’라고 했지) 퍼뜩 기억이 나면서 모든 게 풀렸습니다. 우리말에서 쓰던 단어를 그대로 영어로 옮긴다 해서 그게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니라는 걸 실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Benz’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현지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었지요. 사실 거리에 있는 벤츠 딜러샵에는 분명히 ‘Mercedes-Benz’라고 간판을 걸어뒀는데도 현지인들은 저 차를 그냥 ‘Mercedes’라고 부릅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북미에 벤츠란 차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때부터 저는 이 ‘relevance 적확성’에 관심을 갖고 현지인들의 대화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적확성, 즉 적절하고 정확한 표현은 한영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월마트는 쥐라기 공원

소매업계에서 거대 기업인 월마트(Wal-Mart)에 관해 말하면서 우리식으로 ‘소매업계의 공룡, 월마트’라고 말하고 싶다면 어떤 단어를 써야 할까요? ‘공룡’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dinosaur’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 문장의 공룡은 ‘지배적인 사업자, 영향력이 큰 기업’이란 뜻이기 때문에 ‘dinosaur’가 아닌 다른 단어를 써야 합니다. 바로 ‘juggernaut’이 적확한 단어이지요. 그러니까 제대로 된 영작은 ‘Wal-Mart, a juggernaut in retail business’입니다. 만약 저 문장에 중생대의 공룡인 dinosaur를 넣으면 상대방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예약이나 약속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치과나 인터뷰 같이 누군가를 만나는 예약은 ‘appointment’, 렌터카나 호텔처럼 다른 사람들이 선점하기 전에 미리 잡아둔다는 의미의 예약은 ‘reservation’을 씁니다. 만약 ‘내가 하늘에 가서 달을 따올게, 꼭 약속할게’라고 했다면 그건 ‘promise’겠지요. 실현 가능하건 불가능한 일이건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겠다’ 할 때의 약속은 ‘promise’를 씁니다.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임금과 신하 사이의 ‘맹약’ 수준이라면 그때는 ‘covenant’를 씁니다.

낚시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고기를 잡는 것은 ‘fishing’ 취미나 여흥으로 하는 것은 ‘angling’으로 구분됩니다. 그래서 ‘fisherman’은 고기 잡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어부이고, 취미로 낚시를 즐기는 소위 ‘강태공’은 ‘angler’라고 부릅니다.

신발에 관한 어휘도 세부적으로 보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한영사전을 찾아보면 ‘shoes’가 항상 먼저 나와 있지만 사실 Shoes는 구두나 격식 있는 신발을 가리키는 말이고, 신발을 통칭할 때는 ‘footwear’를 더 많이 씁니다. 그러니까 운동화를 ‘shoes’라고 하면 여기 사람들은 좀 헷갈릴 것입니다. 운동화는 ‘sneakers’이니까요. 요즘에는 좀 세분화해서 테니스화(tennis shoes), 조깅화(running shoes)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운동화라는 통칭은 ‘sneakers’입니다. 물론 운동화를 ‘shoes’로 써도 상대방은 위에 언급한 ‘dinosaur/juggernaut’ 케이스와는 달리 무슨 뜻인지는 알아듣겠지만 좀 우습게 보일 수 있겠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이 식목일 얘기 하면서 “나 어제 산에 가서 나무를 ‘묻고’ 왔어”라고 한다면 피식 웃음이 나오겠지요.

이민 오거나 유학 와서 제일 먼저 하는 것 중 하나가 거처를 구하는 일일 텐데, 여기서도 ‘적확한’ 단어를 잘 써야 하는 상황을 만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룸’이라고 하면 연립주택이나 오피스텔에 공간 하나만 있는 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갔을 때 별도 칸막이 없이 거실, 주방, 식당 등이 한 공간에 있는 집을 우리는 ‘원룸’이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그런 집을 ‘Studio’라고 통칭합니다. 그러니까 캐나다에서 ‘원룸’을 찾는다고 하면 부동산 중개인이나 에이전트가 방 하나가 있고 별도로 욕실 하나 딸린 집을 보여줄 것입니다. 영어에서 ‘room’이라고 하면 일단 주 출입구를 들어온 다음 벽과 문이 있어서 다른 실내 공간과는 차단된 장소를 부르는 말인데, 이걸 몰라서 생기는 relevance 문제라 하겠습니다.

캐나다에서는 미국을 지칭하는 단어도 우리 개념과 많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 하면 그냥 ‘Americ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캐내디언들은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을 ‘States’라고 지칭합니다. 미국 국명의 중간에 있는 ‘States’만 따로 떼서 부르는 것이지요. 캐나다나 미국이나 똑같이 North America에 있는 나라인데 왜 미국만 ‘America’라고 부르냐, 그런 의도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미국을 ‘South of Border’ 직역하면 ‘국경 남쪽 나라’라고도 하는데, 이는 미국 사람들이 캐나다를 ‘North of Border’라고 부르는 것에 상응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쓰이는 ‘캐시백’이란 단어도 여기서는 완전히 다른 의미입니다. 한국에서는 신용카드나 멤버십카드를 잘 사용하면 사용액의 일정부분을 적립해 되돌려 주는 것을 뜻하지만, 캐나다에서 ‘캐시백’은 직불카드(debit card)로 결제할 때 물건값을 지불하면서 동시에 내 계좌에서 현금을 찾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debit card로 물건값을 결제하면 본인의 체킹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데, 이때 물건값에다 내가 원하는 금액만큼 더 결제해서 캐시어가 그 차액을 현찰로 돌려주는 걸 캐시백이라고 부릅니다. 말하자면 내가 ATM에 가서 따로 현금을 인출해야 하는 수고를 상점에서 덜어주는 것이지요. 신용카드가 아니라 직불카드, 즉 내 계좌에서 현금을 결제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모든 상점에서 다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상황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가겠지요.

Cashier: Sir, total is $125. How do you wanna pay?
Customer: Ok, debit card, and I need a 40-dollar cashback, please.
Cashier: Sure. Tap your card on, please. (결제되고 나면) Here we go, 40 dollars, sir.

한국에서 통용되는 의미의 ‘캐시백’은 영어에서 ‘rebate’라고 부릅니다. 내가 사용한 만큼 판매자가 감사의 의미로 일정부분을 돌려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rebate’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적인 반대급부, 즉 일종의 ‘뇌물’이란 의미로 사용되는데 실제 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와 거래하면서 거래처의 key account manager에게 ‘거래가 성사되면 내가 납품할 물건의 값이 백만달러인데, 이걸 너희 회사가 구매하도록 손을 써주면 내가 너에게 물건값의 20% 주겠다’고 하면 뇌물이지요. 이런 돈은 ‘kickback’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rebate’는 합법이고 ‘kickback’은 불법입니다. 이렇듯 현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거의 매일 relevance와 관련된 돌발상황을 맞닥뜨릴 것입니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언어를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라고 한다면 적확성까지 따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대충 대화하다 안되면 손짓발짓까지 동원해서 ‘의사소통’ 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적확한 영어표현을 사용한다면 현지에서 살아가며 언어로 인해 알게 모르게 당할 수 있는 ‘무시’나 ‘손해’를 피할 수도 있고, 주눅들지 않고 거래처 담당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생각해보면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어느 외국인이 “말이 났으니 말인데, 나도 정말 이 나쁜 습관을 고치고 싶어요”라고 유창하게 말한다면 ‘와, 저 사람 어디서 저런 한국말을 배웠지?’하고 감탄하겠지요. 저는 20여년 전에 실제로 저렇게 말하는 미국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인생길은 누구나 처음 걷는 길이니까요. 하지만 그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그것은 지도를 보며 길을 가듯 다른 사람이 걸으며 남긴 데이터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남깁니다.   <David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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